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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 두었을까?

최석남 전남도 역사인문팀장

2019년 11월 07일(목) 19:02
가을이 깊어간다. 짙고 옅은 빛깔 단풍으로 사람들 가슴도 발갛게 물들였던 나무가 서서히 잎을 떨궈낸다. 마을 어귀에서는 낙엽을 쓸어 모아 불을 지피기도 한다. 어느 단편소설 작가는 낙엽 타는 냄새를 갓 볶아낸 커피,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고 했다. 낙엽은 타들어 가면서 사라지지만 향기는 긴 여운을 드리운다. 이 여운 너머로 입동(立冬)이 다가섰다. 사람들은 무, 배추를 뽑아 김장을 하는 시기다. 김장이 끝나면 가을도 떠날 채비를 한다. 나무는 낙엽을 버리고 겨울 속으로 떠날 것이다. 계절의 변화는 무심히 흐르는 것만 같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훨씬 시끌벅적하다. 클라우스 슈밥은,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4차 산업혁명의 영향 측면을 '다양한 기술간 융합으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규모, 범위, 복잡성의 변화가 발생하고, 그 결과 인간의 삶·일·연결 방식이 근본적으로 전환되는 것'이라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은 초지능과 초연결, 초융합이다. 지구가 하나로 연결되고 있다. 전 세계가 하나의 국가처럼 되는 것과 더불어 가족과 혈연을 뛰어넘는 지구촌이 되는 시대다.

이처럼 팽창하는 산업사회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존중되고 있는가? 지구촌 속의 나는 겨울 속으로 떠나는 길목의 어디만큼 서 있을까? 정신없이 빨라진 시대에 이런 질문은 사치라 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지만 한편으론 삶의 근원과 존재 이유를 찾는 물음이다.

이러한 물음의 해답을 찾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인문학이다.

인문이란,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및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말한다. 인문학은 언어학·문학·역사학 등 학문에다가 직관·체험·표현·이해·해석 등 관련 분야를 꼽는다. 진정한 인간다움,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보고 인간 존엄을 성찰할 수 있도록 돕는데 이 학문이 쓰인다.

사회는 늘 복잡다단하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중 단 한번이라도 상심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없을 것이다. 고려시대 승과시험과목이기도 했던 중국 송나라 불교서적인 전등록에는, '땅으로 인하여 넘어진 이는 땅을 딛고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땅에서 넘어진다는 것은 다름 아닌 마음이 넘어진 것일 것이며, 마음을 딛고 일어나려면 삶의 고뇌가 따른다. 이때 혼돈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정신문화 함양으로부터 시작된다.

최근 입시제도가 요동친다고 말한다. 대학 진학 즈음에 문학을 전공하면 밥 벌어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도 돌았고, 취직이 잘되는 학과를 선택해야 한다는 말은 설득력 있어 보였다.

한국교육개발원 2017 취업통계를 보면, 4년제 대학 전체 취업률 평균 62.6%에 비해 인문계열 취업률은 55.4%로 낮다. 그렇다면 인문학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될까? 인간이 삶의 현상에 물음표를 붙이는 한 인문학은 지속될 것이다.

인문정신문화란, 인문에 기반을 둔 정신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활동이요, 유무형의 문화적 산물을 말한다. 인간다움과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는 눈을 가짐으로써 깊은 공감의 즐거움, 행복감을 갖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16년 인문학법을 제정하고 인간 존엄을 바탕으로 국민의 자율성과 창의를 존중하는 것을 기념이념으로 인간의 가치, 인문정신문화를 진흥해 왔다. 지난 10월 마지막 주는 교육부가 주최한 인문주간이었다. 인간의 기본적인 소양을 길러서 진정한 인간다움과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을 돕겠다는 행사 중 하나다.

다만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국가 R&D 예산이 연평균 2.6% 증가한 것에 비해 인문학 진흥 R&D 예산은 0.2% 증가에 그쳤다.

앞으로 교육부는 관련 예산을 추가 확보하여 행복하고자 하는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투자하기를 고대해 본다. 자치단체는 보다 많은 프로그램을 지역민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겠다.

우리고장 출신 고재종 시인은, '감나무 잎새를 반짝이는 게 어찌 햇살뿐이랴'고 노래했다.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82년생 김지영도 만나고, 자유의 소중함을 알게 해준 간양록의 강항 선생도 다시 마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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