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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인권 큰 별 이희호 여사 'DJ 곁으로'

굴곡진 현대사 온몸 부딪친 1세대 여성운동가
동교동계 구심점이자 재야 인사 '정신적 지주'
향년 97세…장례 사회장 엄수·국립현충원 안장

2019년 06월 11일(화) 19:44
11일 오후 광주시청 1층 로비에 마련된 고 이희호 여사의 분향소에서 광주시청, 시의회의원, 교육청, 구청 간부 공무원들이 합동으로 조문하고 있다. /김태규 기자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자 이희호 여사가 지난 10일 별세했다. 향년 97세. 김대중평화센터는 이날 “이 여사가 오늘 오후 11시37분 소천했다”고 밝혔다.

이 여사는 올해 3월부터 노환으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이 여사는 수년간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지만, 지난주부터는 혈압이 크게 떨어졌다가 다시 회복되는 위중한 상황이 이어졌다.

1922년생으로 김 전 대통령보다 두 살 많은 이 여사는 1950년대 초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미국 스캐릿 대학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은 당대 엘리트 여성이었다.

귀국 후에는 이화여대 사회사업과 강사로 교편을 잡는 한편 초대 대한YWCA 총무 등을 역임하며 여권 신장에 기여한 여성운동가로 활동했다.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고 높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고 이희호 여사가 지난 2016년 출간된 ‘이희호 평전’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이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기 이전에 여성지식인, 여성운동가로서 평생 여성 인권 신장에 힘쓰며 한국 여성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 여사는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 박사, 여성교육자 황신덕 여사, 헌정 사상 첫 여성 당 대표(민주당)가 된 박순천 여사 등 당대의 엘리트들과 함께 여성운동 ‘1세대’로 활약했다.

1959년에는 대한YWCA연합회 총무를 맡았다. YWCA에서는 ‘축첩자를 국회에 보내지 말자’는 캠페인에 나섰고, 남녀차별적 법조항을 수정하는 데 힘썼다.

이 여사가 핵심이 된 YWCA의 이런 활동은 1989년 남녀차별적 내용을 일부 고친 가족법 개정의 성과를 낳았고 훗날 호주제 폐지로까지 이어졌다.

이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온 후에도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활발히 활동했다.

‘페미니스트’인 이 여사에게 평생에 걸쳐 받은 영향으로 김 전 대통령 역시 여성 문제에 관심이 컸기에 국민의 정부는 적극적인 여성 정책을 폈다.

1998년에는 가정폭력방지법이, 1999년에는 남녀차별금지법이 각각 시행되기도 했다.

이에 ‘국민의 정부 여성정책 뒤에는 이희호가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7년 부인 이희호 여사에게 보낸 옥중 편지에서 “우리는 사적으로는 가족 관계지만 정신적으로는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동행자 간”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1983년 미국 망명 시절 강연에서 “아내가 없었더라면 내가 오늘날 무엇이 됐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회고했다.

이 여사 곁에서 그의 인생역정을 지켜봐 온 사람들은 ‘김대중의 삶이 곧 이희호의 삶이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 여사는 스스로 주체적인 여성 운동가이자 민주화 운동가였으며, 김 전 대통령의 둘도 없는 ‘동지’이기도 했다.

선거 때마다 이 여사는 ‘남편이 1진이라면 나는 2진’이라면서 김 전 대통령이 일일이 챙기지 못하는 골목을 누비고 발품을 팔아 ‘부창부수’라는 칭송을 들었다.

1987년과 1992년의 쓰라린 대선 패배, 김 전 대통령의 정계 은퇴 선언과 복귀, 1997년 대선 승리 등 고비마다 이 여사의 지극한 내조가 있었다.

김 전 대통령 퇴임 후 부부는 동교동 사저로 돌아왔으며, 이 여사는 2009년 8월 김 전 대통령 서거로 47년 동안 함께 했던 ‘동역자(同役者)’와 작별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 서거 직후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으로 선임돼 동교동계의 구심점이자 재야인사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톡톡히 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특1호실에 마련됐으며 가족측의 의사에 따라 사회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14일이며, 당일 오전 7시 고인이 장로를 지낸 신촌 창천교회 에서 장례 예배가 열린다. 장지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이다. /서울=강병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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