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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용과 떠나는 역사여행<49> 석탑과 승탑

돌로 만든 대표적 문화유산
탑의 시작은 석가모니 무덤
전라도, 최고의 승탑 집합소

2019년 05월 23일(목) 18:14
의병장 고광순 순절비
연곡사 승탑
‘불원복’ 태극기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384년 백제 침류왕, 527년 신라 법흥왕.‘정답!’ 하면서 손들고 싶은 분이라면 한국사능력시험 안봐도 초급 인증. 삼국시대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되던 때입니다. 천 육백 년 전입니다. 그 긴 역사를 갖고 있기에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절반 이상은 불교문화유산이고, 그 중 석조유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돌로 만들어져 긴 시간을 이어온 문화유산 중 석탑과 승탑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아이들 교육역사여행으로 제가 가장 많이 찾는 절은 경주 불국사입니다. 삼국통일 자신감의 표현으로 불교 이상향을 만들어 놓은 불국사의 중심은 아무래도 석가탑과 다보탑이 될 것입니다. 751년에 세워진 불국사. 대한민국 국보 제20호 다보탑과 제21호인 석가탑은 천삼백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겠지요.

탑의 시작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무덤에서 출발합니다. 인도에서 최초의 탑은 그릇을 엎어놓은 모습의 반구형입니다. 반구형이 기단을 받치고, 위에는 피뢰침 형태의 상륜부를 올리지요. 이 탑이 중국에 들어와 나무를 재료로 목탑이 되고, 목탑의 취약점인 썩기 쉽고 불에 타기 쉽다는 점 때문에 벽돌을 사용한 전탑과 돌을 사용한 석탑이 대신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초기엔 황룡사 9층 목탑처럼 목탑이 있었을 것이고, 이어서 익산의 미륵사지, 부여의 정림사지, 경주의 석가탑 등 돌탑이 주로 만들어집니다. 탑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무덤에서 출발한다면 모든 탑에 부처님의 흔적이 들어가야 할 터인데, 유한한지라 때론 경전을 넣기도 합니다. 석가탑에서 발견된 세계최고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대표적인 것이지요.

탑과 더불어 돌로 만든 대표적인 문화유산이 승탑입니다. 한때는 부도라 이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주인 없는 승려의 묘를 말할 때 쓰인 표현이라 이제는 승탑으로 고쳐 부르고 있습니다. 스님의 탑인 승탑은 스님의 무덤인 셈입니다.

승탑은 신라말기 선종이 널리 퍼지면서 등장합니다. 한 종파를 이룬 고승이 돌아가시면 그를 기념하며 부처님의 탑에 버금가는 승탑을 만들고 그 옆엔 승탑 주인공의 행적을 기록한 비를 세웁니다. 신라말기 조형미술을 대표하는 유물입니다.

전라도는 손으로 꼽는 최고의 승탑 집합소입니다. 화순 쌍봉사를 시작으로 곡성 태안사를 거쳐 구례 연곡사에서 그 정점을 찍게 됩니다.

연곡사를 찾아갑니다. 국보로 지정된 2개의 승탑과 보물로 지정된 승탑과 승탑비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도선국사의 승탑으로 추측되기도 합니다만 정확히 주인을 몰라 방위에 따라 동승탑으로 전해지고, 건너편은 북승탑이라 이름하며, 서쪽의 승탑은 조선시대 주인이 알려진 승탑입니다. 가장 먼저 통일신라시대 동승탑이 만들어지고, 이어 고려 석공이 북승탑을, 그리고 다시 조선 석공은 둘을 모방하고 재창조해 승탑을 만들었습니다.

승탑의 기본형인 팔각기단 연화받침에 몸돌을 얹고 지붕을 올렸습니다. 낙원에 산다는 상상의 새인 가릉빈가, 사천왕, 구름에 휩싸인 용, 사자 등이 새겨져 있고, 지붕돌에는 서까래와 기왓골, 막새기와까지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돌에 이상향 세계를 표현해 천년이 넘는 세월 그 곳에 변함없이 자리하게 된 힘이 되었겠지요.

돌을 가공해 만들어진 승탑 사이로 대한민국 사람인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습니다. 서쪽 동백나무 숲 한켠 승탑처럼 화려함은 없는 조그만 까만 비석. 승탑이 기교로 천년을 이어왔다면, 이 비석은 정신으로 천년을 더 이어져야 할 기념물입니다.

의병장 고광순 순절비. 고광순 의병장의 비석입니다. 고광순 의병장은 1907년 이곳 연곡사에서 일본군의 총탄에 돌아가십니다. 당시 나이 60세. 그의 12대조가 임진왜란 호남의병의 선봉인 제봉 고경명으로 제봉 또한 일본의 침략에 맞서 60세에 돌아가신 역사가 오버랩됩니다.

최근 임시정부 백주년 이벤트로 태극기 전시물이 많이 보입니다. 초기 태극기로 등장하는 ‘불원복(不遠復) 태극기’. 바로 고광순 의병장의 태극기입니다. ‘나라 되찾기가 멀지 않았다’는 의미의 불원복의 희망을 품고, 계란으로 바위치는 심정으로 대항했었을 한말 의병들. 죽을 줄 아는 길을 걸었던 그들은 그렇게 일본군의 총탄에 희생되었습니다.

1907년 불원복의 희망은 일본이 물러나고서도 다음 세대에게도 희망으로만 남겨진 채 일본이 아닌 또다른 외세에 분단되어 민족끼리 총탄을 주고받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회복은 멀기만 합니다. 백십년 전 어느 날 새벽 연곡사 숲에서 목숨을 다한 의병들에게 죄스러운 대한민국입니다.

/체험학습 동행(historytour.co.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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