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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이래도 발뺌만 할 텐가
2019년 05월 14일(화) 18:46
시민들에게 집단발포가 이뤄진 1980년 5월 21일,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광주에 와 계엄군에 '사살명령'을 내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또 희생자 시신을 국군통합병원에서 소각했으며, 일부는 김해공항으로 이송해 해양투기 했을 것이란 증언도 나왔다. 5·18당시 주한미군 정보요원으로 광주상황을 본국에 보고한 김용장씨의 확고한 증언이다.

김씨는 13일 기자회견에서 5·18당시의 광주상황과 전두환의 움직임, 헬기사격, 희생자처리, 북한군침투설, 여론공작조운영 등에 대해 낱낱이 증언했다. 김씨에 따르면 전두환은 집단발포가 이뤄진 21일 정오 헬기를 타고 광주 제1전투비행단에 왔으며, 정호용 특전사령관을 비롯 이재우 505보안대장 등 74명과 회의했다. 전두환이 이 회의석상에서 시민에 대한 '사살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김씨는 "전두환이 회의에서 시민에 대한 사살명령을 내렸다는 게 합리적인 추정"이라고 증언했다. 북한군 600명 침투설과 관련해서는 전두환이 허위 날조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당시 미 첨단 정보망이 북한과 광주를 집중 정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군 침투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김씨는 또 시민행세를 하며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폭동을 유도해 강경진압 빌미를 만들기 위한 공작조가 운영됐다고 증언했다. 당시 신군부가 광주를 희생양으로 삼기 위한 치밀한 사전 각본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밖에 21일 낮 도청 앞과 27일 광주천에서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것과, 희생자 시신의 소각 및 일부 시신의 김해 이송 후 해양투기 증언도 나왔다. 이렇듯 부인할 수 없는 증언이 나왔는데도 전두환과 그 일당들은 '발뺌'으로 일관하고 있다. 전두환은 이제라도 양심고백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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