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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아산 이충무공 유적

이순신 장군 몸과 정신 모신 곳

2018년 09월 26일(수) 16:40
아산을 찾아가면 장군의 정신과 몸을 모두 만날 수 있다. 이순신의 정신이 모셔진 사당 현충사.
대학 졸업 즈음 광주소재 기업 입사면접에 응시했습니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이순신 장군이라고 답했습니다. 당연 이유를 물었을 것이고, '약무호남 시무국가'를 언급하며 "호남의 가치를 아셨던 분이기 때문입니다"라는 말로 답하면서 호남이 우리 역사 속에서 자리한 가치를 덧붙여 호남 기업이 지향해야 할 바를 얘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합격해 제 첫 직장이 되어 몇 년을 근무했습니다. 그 직장에 계속 남아 있었으면 면접 때의 이순신 장군을 잊고 지냈겠지만, 취미생활이 업이 된 지금 현장에서 이순신 장군을 일년이면 몇 번을 불러내게 됩니다.



역사여행은 주제를 정해놓고 행선지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선 전후기 분기점인 임진왜란이 주제면, 전라도와 경상도 곳곳에 산재한 이순신 장군의 흔적들이 역사여행 탐방코스가 됩니다. 통영, 남해, 여수, 순천의 동쪽 지역이나 해남 진도 등의 서쪽 코스로 대부분 경상도, 전라도 바닷가이지요. 그리고 바닷가가 아닌 이순신 장군을 찾아가는 곳으로 바로 오늘 소개할 충남 아산에 장군의 유허가 있습니다.

아산을 향하는 버스에서 이런 말로 시작합니다. 사람은 몸과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죽으면 정신과 몸이 분리되고, 몸은 여기에 남아 있지만 정신은 흩어지지요. 그 정신을 기리는 방법으로 이름을 적은 위패를 만들거나 모습 그래로 그림을 그려 사당에 모십니다. 그리고 정신이 빠져 나간 몸은 묘에 모셔지구요.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모신 사당은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반면 몸이 모셔진 묘는 딱 한 곳, 아산에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을 뵈러 아산을 찾아가면 장군의 정신과 몸을 모두 만날 수 있습니다.

몸이 모셔진 묘를 찾아갑니다. 공식 명칭은 이충무공묘입니다. 이충무공묘는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시던 때의 마지막 삼도수군통제영이었던 고금도에 모셔졌다가, 다음해인 1599년 2월 중국출신 당대 최고의 풍수가가 자리 잡은 아산의 금성산에 모셨고, 그로부터 16년 뒤 그곳에서 약 1km 떨어진 현재의 자리로 옮겨집니다. 16년 만의 이장에서 이충무공은 전쟁때 돌아가시지 않았다는 은둔설이 호사가들의 입에서 만들어지고, 이는 다시 왜군의 총에 맞은게 의도적 자살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도 생겨납니다.

백성들은 왕을 불신하고, 왕은 위기를 이겨낸 무장들을 경계했고, 이를 잘 알고 있는 이순신은 본인과 집안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물러섰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해설을 위해 이순신을 공부해 보면 이순신은 정면돌파 스타일이지 이런 계략으로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묘소를 참배하고 이어 정신이 모셔진 사당 현충사를 찾아갑니다. 제가 역사여행 다니면서 수많은 사당을 가봤지만, 그 중 현충사는 그 크기가 으뜸입니다. 1960년대 군인 출신 대통령이 군인정신으로 국가재건을 표방하며 현충사를 넓고 웅장하게 꾸며 놓았습니다. 그로 인해 이순신의 유허가 독재정권의 작품이라며 거부하는 사람들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아산 현충사의 출발은 조선 숙종때 유생들의 건의로 세워지고 임금의 현판글씨가 내려졌었고, 정조임금은 이순신 매니아로 이충무공전서를 편찬케 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때 없어졌다가, 일제강점기 사당의 제사 비용을 충당하는 땅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소식에 전국민 모금운동이 벌어져 예정된 금액을 훨씬 웃도는 성금이 모아졌고, 1932년 일본군을 무찔렀던 이순신 장군의 사당 현충사가 재건축됩니다.

그때 조선시대 임금 숙종이 썼던 현충사(顯忠祠) 한자 현판을 달았고, 1960년대 이후 재확장 과정중 세워진 성대한 사당엔 당시 대통령이 직접 쓴 현충사 한글 현판이 걸려있어, 두 개의 사당이 있는 현충사 현판을 두고 설왕설래 되며 올 초엔 국회에까지 그 문제가 올려졌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그렇습니다. 옛 현충사도 지금의 현충사도 역사입니다. 역사는 때론 부끄러운 면도 있지만, 그 부끄러운 면을 보면서 내가 지금 여기에서 미래를 계획하며 가치관을 정립하기도 합니다. 생각하며 보아야 하고, 공부하면서 보아야 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과 싸워 나라를 지켜냈고, 장군의 죽음과 함께 7년간의 지루한 전쟁은 끝납니다. 장군은 일본군과 싸웠고, 일본군에 의해 생을 마감하지요.

몇백년의 세월이 흐르고 장군을 모신 사당엔 일본군 장교 출신이 쓴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사당 안의 영정은 친일파 화가가 그렸구요. 역사는 이렇게 계속 흘러가고 우린 계속 공부를 해야하는 이유이지요.

그래서 한글 현판을 어쩌자구요? 어디 그런 곳이 한두 곳이래야 말이죠.





/체험학습 동행(historytour.co.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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