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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경복궁과 리마빌딩

왕과 자손, 온 백성이 태평성대 복 누리길
경복궁 중심 근정전은 정치에 부지런하라는 의미
리마빌딩 자리, 정도전 집터이자 말 관청 사복시터

2018년 07월 26일(목) 18:50
제가 인솔해 다니는 역사여행 중 '동행누리'란 이름으로 3월 선사시대 유적부터 시작해 매월 시대순으로 다니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첫 암사동을 시작으로 4월 충주 고구려, 5월 경주 통일신라, 6월 논산 후삼국과 고려, 7월이면 조선 시대가 되고, 조선의 건국 주제에 맞추다 보니 경복궁을 찾게 됩니다. 7월이면 좀 덥긴 하지만, 그래도 작년까지만 해도 다닐 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7월 더위가 고역입니다. 저야 업이니 그렇다쳐도 답사여행객들에겐 역사공부가 아니라 극기훈련이 됩니다. 상행 버스에서 미리 최면을 겁니다. "경복궁은 항상 복잡합니다. 우리나라 대표 유적이라 국내외 관광객으로 북적이며, 사람이 많다보니 먼지 날리고 해설할라치면 다른 팀의 목소리에 섞여 유쾌한 여행이 안됩니다. 사람이 많아서요. 그래서 사람이 적은 날에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비가 오거나 그것도 많이, 아주 춥거나 아주 더울 때 찾는 것입니다. 오늘이 딱 그 날입니다."



오늘은 이열치열 기어이 경복궁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일년중 가장 중요한 날을 꼽으라면 대부분 생일을 꼽습니다. 그럼 학교도 생일이 있을까? 도시는 생일이 있을까? 학교야 개교기념일을 경험하기에 바로 답하지만 도시에선 갸우뚱합니다. 학교의 개교기념일처럼 도시에도 그에 걸맞는 기념일이 있습니다. 서울은 서울시민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10월 28일에 행사를 합니다. 1394년 10월 28일 조선의 첫 임금인 태조가 이전 왕조의 도읍지인 개경에서 한양으로 이사한 날입니다.

조선의 계획도시 한양엔 중국 주나라 궁궐건축 좌묘우사(左廟右社)의 원칙에 입각해 왼쪽에 왕실의 사당인 종묘를 오른쪽에 농사와 땅의 신을 모시는 사직단을 그 가운데에 궁궐을 세웁니다. 조선의 첫궁궐 경복궁의 탄생입니다. 경복궁은 임진왜란때 전소되고 폐허로 남아 있던 것을 조선말 흥선대원군이 왕권강화의 목적으로 다시 세웠고, 일제강점기 훼손되고 옮겨진 곳도 있지만 근정전을 비롯해 그 자리 그곳엔 조선 궁궐의 위용과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경복(景福)은 '시경'에 나오는 말로 왕과 그 자손, 온 백성들이 태평성대의 큰 복을 누리기를 축원한다는 의미입니다. 경복궁을 비롯한 각각의 전각에는 그 기능과 위치를 말하는 것보다는 건물이름에 정신을 넣었습니다.

정문인 광화문을 통과해 흥례문을 지나 근정문에 들어서면 경복궁의 중심 근정전에 다다릅니다.

근정. 부지런할 근(勤)에 정사 정(政)입니다. 정치에 부지런하라는 의미입니다. 한양도성을 비롯한 궁궐 건설 마스터플랜을 제시한 정도전은 근정전의 이름을 올리면서 덧붙입니다.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못하면 폐하게 됨은 필연한 이치입니다.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낮에는 어진 이를 찾아보고, 저녁에는 법령을 닦고, 밤에는 몸을 편안하게 한다는 것이 임금의 부지런한 것입니다. 어진 이를 구하는 데에 부지런하고 어진 이를 쓰는 데에 빨리 한다 했으니, 신은 이것으로서 이름 하기를 청하옵니다."

'경복하려면 근정해라 - 행복하려면 정사에 부지런해라' 그 부지런함이란 할 때 할 것 해라라는 메시지입니다.

고려말 피폐한 민생을 목도한 신진사대부 정도전은 무장 이성계와 함께 새나라를 건설하며 그의 머릿속은 한 사람, 한 집단의 나라가 아니라 유교의 원리에 의해 다스려지는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꿈꾸는 나라를 추구합니다. 목숨을 걸고 혁명했던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은 신하들이 왕을 좌우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고, 급기야 나이 어린 동생을 세자로 삼는 정도전의 계략에 반기를 들고 그를 제거합니다.

경복궁 앞에 서면 왼쪽편에 이마빌딩이 보입니다. 건물 외벽에 한자 利馬가 도드라져 보이는 빌딩입니다. 이 빌딩 앞엔 '정도전의 집터'와 더불어 '사복시터'라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조선개국과 함께 최고권력 정도전은 집터를 잡으며 집자리 품평을 받았습니다. 백자천손의 터, 자손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는 말이지요. 헌데 정도전은 그 대에 목숨을 잃고, 조선왕조 5백년 동안 역적의 이름으로 남겨지며, 집은 허물려 그 자리엔 왕이 타는 말 및 마구와 목축에 관한 일을 맡던 관청 사복시가 생깁니다. 어쩌면 사복시의 말들은 내내 자손이 이어진 걸 보면 백자천손의 집터는 확실했나 봅니다.

사복시는 1907년 없어지고, 일제강점기엔 일본 군마대가 주둔했으며, 해방후에는 서울시경 기마대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리마 빌딩의 연원이 되는 것이지요.

역사는 질기게도 흘러갑니다. 그 현장에 우린 이렇게 서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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