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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경주 포석정

굽어진 물길에 술잔 띄우며 잔치했던 곳
사적 제1호…신라 패망 현장으로 알려져

2018년 07월 12일(목) 19:19
우리가 보는 포석정의 흔적은 포석정의 부속 시설물일 뿐이다. 63개의 돌덩이를 이리저리 짜맞춰 22미터 물길을 만들어 뱅글 돌아 흐르게 돼 있다.
우리문화재와 문화유적을 국보, 보물, 사적 등으로 구분하고 제각각 제 몇호하면서 일련번호를 붙여 관리합니다. 국보 제 1호와 보물 제 1호는 각각 숭례문(남대문)과 흥인지문(동대문)으로 그야말로 상식인데 반해 사적 제 1호는 잘 모르더군요. 대한민국 사적 제 1호는 경주 포석정지(鮑石亭址)입니다. 포석정이 있었던 자리이지요.

순번이 중요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1호라고 하면 나름 상징성을 갖고 있겠지요. 그런데 국보, 보물, 사적 1호인 숭례문, 흥인지문, 포석정지에 처음으로 문화재 번호를 붙였던 게 일제강점기 일이라 왜 이것들이 1번인가는 식민사관의 영향이었다느니 그냥 관리차원이었다느니 하며 논란 중에 있습니다.

포석정은 신라 패망의 현장으로 알려진 장소입니다. 후백제 왕 견훤의 침입이 임박했는데도 신라 경애왕은 연회를 베풀다가 사로잡혀 자결을 강요받고 죽게 되지요. 치욕적인 장소를 부각시켜 열등민족임을 강조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그 현장을 고적 1번으로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일단 사적 번호에 대한 논란은 벗어두고 오늘은 경주 포석정을 찾아갑니다.







대한민국 사적 제 1호 포석정지.

입구에 들어서서 포석정의 유일한 흔적을 마주대하면 어른이고 아이고 간에 "애걔"라는 탄사로 첫 방문의 감상평을 매기고, "이게 다예요?" 라면서 '너 왜 여기 데려왔어?'라는 질문을 대신합니다.

사실 우리가 보는 포석정의 흔적은 포석정의 부속 시설물일 뿐입니다. '포석정'은 말 그대로 포석정이라는 정자도 있었을 것이고, 남겨진 기록으론 포석사라는 사당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라말기 경애왕은 적국이 침입하던 당시 놀이를 했던 것이 아니고, 국가의 안녕을 빌었을 것이다라며 해석하지요.

약체인 신라가 고려에 구원을 요청했지만, 후백제군은 여전히 신라로 밀고 들어오고, 신라 왕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은 선대왕들에게 기도를 올리는 일뿐이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증거가 될 사당이나 제사 관련 유적은 흔적도 없고 놀이 장소인 포석정의 부속 시설물인 돌 유적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남겨진 돌 유적은 포석정의 부속 시설물로 63개의 돌덩이를 이리저리 짜맞춰 22미터 물길을 만들어 뱅글 돌아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유배거유적(流盃渠遺蹟)으로,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했다는데, 우리말로 풀어보니 잔이 물 위에 둥둥 떠내린 도랑 유적으로, 굽어진 물길에 술잔 띄우며 잔치를 했다는 것입니다.

유상곡수연은 353년 3월 3일 중국 남방 난정이란 곳에서 왕희지 등 당시 문인들이 새봄의식과 함께 흐르는 물에 잔을 띄어 시를 짓는 놀이에서 연유했다고 하며, 그 문화는 한중일이 공유했지만, 그 자취는 포석정의 유구가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은 일제강점기 물이 흘러드는 부분과 물이 빠지는 부분이 없어져 물길을 확인할 수 없고, 남겨진 돌을 다시 짜맞추며 기능을 잃어버렸고, 옆 고목의 뿌리는 돌 유구를 들어올려 유상곡수연의 기억마저도 잊혀져 버렸습니다.

역사여행에서 자주 만나는 궁성이나 산성유적은 범국가사업으로 그 나라의 힘을 나타냈을 것이며, 옛 유적중 남겨진 석탑이나 석등 같은 불교조각들은 종교적인 신심과도 결부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의 생활모습은 보기가 힘들지요.

역사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실생활문화를 보여주는 유적과 유물이야말로 진짜 역사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포석정에 들어서서 '애걔'하면서 실망했던 느낌은 웅장함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주 요인은 천년도 훨씬 더 넘는 시절에 과학적 계산과 기술로 만들었던 물길이 뒤틀려 빙그르 돌아 흐르는 술잔을 마주 대하는 신라인을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게 다예요?' 라고 묻는 사람들의 실망감을 극복하는 저의 여행이야기는 이곳에서 직접 시 짓기 이벤트를 해보는 것입니다. 신라 사람들처럼 압축된 한자로 정형하게 시를 짓는 능력은 없을지라도 우리말로 삼행시 정도는 만들 수들 있지요.

"포석정 유구 저 위에 잔을 띄우고 그 잔이 뱅글 뱅글 돌아 내 앞에 도달하는 시간 5분 드립니다. 포석정으로 삼행시 지어 보세요."

지난 달 장원 작품 운 띄워 읽어봅니다.

포 : 포동포동 우리 아기 정말 이쁘지요.

석 : 석달 열흘을 제 뱃속에 넣고 다녔답니다.

정 : 정이 가는 이 세상 최고의 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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