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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전장 파트너' 정운 장군 기린다

하동정씨대종친회 후손들 해남서 신도비 제막

2018년 05월 22일(화) 17:19
충장공 정운 장군을 기리는 신도비 제막식이 정 장군의 고향 해남군 삼산면 평활리에서 열렸다.
조선 중기 이순신 장군을 도와 각종 해전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린 충장공 정운 장군(1543~1592)을 기리는 신도비 제막식이 고향에서 열렸다.

'하동정(鄭)씨 장령공후 충장공문회'는 최근 해남군 삼산면 평활리 산 176-3(오소재)에서 대종친회와 후손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막행사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한국독립동지회 정찬준 회장을 비롯해 '하동정씨대종친회' 정찬희 회장, 정찬용 전 참여정부 인사수석, 해남향교 박천하 전교, 윤재갑 전 정운함(해군잠수함) 소장, 부산대 정문현 교수(경영학과) 등이 대거 참석했다.

정운 장군은 조선 중종 38년 영암(현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에서 훈련참군 정응정(應禎)의 아들로 태어나 1570년 선조 3년 28세 나이로 병과에 급제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 있었던 녹도만호(鹿島萬戶:고흥군에 속한 섬) 정운 장군은 왜적의 노략질에 구원요청을 한 경상우수사 원균의 간청을 받고 "적병이 호남에 이르기 전에 먼저 나아가 칠 것"을 주장하는 등 강직한 성품으로 기록돼 있다.

하동정씨 장령공파 충장공 문중회 정병진 회장은 추모사 통해 "정운 장군은 전라좌수군 제장 회의에서 대다수가 전쟁 회피 구실만 내세우던 상황에서 '경상도를 구해야 전라도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던 장군이었다"며 "이때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정녹도(鹿島)의 말이 옳소', '정녹도가 아니었다면 국가대사를 그르칠 뻔했다'면서 출전한 일화가 유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후손들이 미약해 이제까지 송래 희공의 한문 신도비문을 받아 놓고도 세우지 못했는데 정운장군 사후 426년이 지나서야 이제야 뜻을 모아 우리말로 된 신도비와 시비를 건립하게 됐다"고 밝혔다.
곽재영 기자         곽재영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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