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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제주도

역사의 진실 밝혀져야 가치관 명확해져
기억돼야 할 아픔 올해 제주4·3 70주년
제주 고·부·양씨 신화 전해지는 삼성혈

2018년 03월 08일(목) 17:17
삼성혈. 제주의 세 성씨 시조가 땅으로 부터 올라왔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제주4·3평화기념관. 제주의 4·3은 광주의 5·18처럼 사현장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살아있는 기억되어진 아픔이다. 당시의 제주 인구 20만중 3만명이 숨졌다.












삼성혈, 박물관, 항파두리성, 하멜기념관, 대정읍성, 추사적거지, 알뜨르비행장, 4·3 평화공원, 마라도, 거문오름.

지난 달 '제주역사여행'이란 주제로 여행했던 곳입니다.

제주도. 성인인 경우는 대부분 몇 번은 가봤지요. 그런데 '제주역사여행'이란 주제로 위에서 언급한 몇 곳은 방문 경험은 둘째치고 이름마저도 생소합니다.

휴양, 유흥 관광이 아닌 역사학습 여행으로서 제주도.

제가 처음 제주 역사여행을 기획하며 선배 여행사에 이렇게 제주여행하려 한다고 물었던 적, "이런 데를 누가 가려고 할까?" 라는 질문을 되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데'를 2014년을 시작으로 매년 몇차례 광주출발 제주 역사여행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마케팅 이론 용어를 빌려오자면 제주여행 차별화 전략이지요.

새 봄. 제주 역사여행을 떠나볼까 합니다.





지역의 이름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딱히 필요치는 않습니다. 우리 지역은 그냥 우리 동네, 우리 마을이면 족합니다. 우리 마을 이외는 다른 마을이구요. 헌데 우리 마을 밖에 사는 외부인은 우리 마을과 다른 마을 그리고 또다른 마을과의 구분을 위해 각 마을의 특징을 잡아 이름 붙여 구분합니다.

제주. '물건널 제(濟)'에 '고을 주(州)'입니다. 물건너 가는 고을. 육지 사람들에 의해 작명되었지요. 분명 대륙의 끝자락인 반도와는 또 떨어진 '제주'는 한반도의 사람들에 의해 지어진 이름입니다.

제주도가 언제부터 한반도의 일부로 편입되었을까?

고려시대에 부르기 시작했던 '제주', 그 이전 시기 사서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탐라를 대표로 담라, 탐로라, 탁라, 섭라 등이 보입니다. '제주'처럼 고을 주(州)가 들어간 곳은 중앙집권체에 소속된 일개의 고을이 아니라 독립된 개체로서의 이름들입니다. 이들은 뜻글자로서의 한자표기라기 보다는 우리말을 한자어로 옮긴 소리글에 가까웠을 것이고, 언어변천 과정에 비추어 탐라는 곧 '섬나라'라는 우리말을 표기한 한자어였을 것이라고 주장되기도 합니다.

탐라류의 이름이 섬나라라고 한다면, 섬나라라는 이름 또한 아마도 육지에서 붙인 이름이었을 것입니다.

제주역사여행으로 제주도를 방문하면 어디를 먼저 갈까? 고대부터 시대순으로 잡아 선사시대 제주를 먼저 소개할까 아니면 역사여행의 의미를 북돋울 만한 꺼리를 잡을까 고민합니다. 단체가 함께 움직이다 보니 버스 동선을 고려하게 되고, 그래서 공항과 가까운 쪽으로 우선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꼭 다스릴만한 곳이 있더라. 그래서 땅으로 내려와 곰에서 변한 웅녀 사이에 태어난 우리민족 시조인 단군.

마을 촌장들이 회의를 하고 있는데, 하늘로 올라간 흰 말이 품고 있던 알, 그 속에서 태어난 신라의 왕.

하늘에서 소리가 있어 구지가를 부르고, 내려진 금상자 안에 들어 있는 여섯 알.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화류 이야기를 천손강림(天孫降臨) 신화라 하여, 그렇지 않는 것들과 분류해 고대 신화 유형중 하나로 구분합니다. 우리민족 신화인 단군 신화를 비롯해 가야 김수로, 신라 박혁거세 등이 하늘과 소통하는 존재라면, 제주도에는 이와는 달리 땅에서 솟구쳐 오르는 신화가 있습니다.

첫 일정은 제주의 시작을 알리는 제주 신화의 유적인 삼성혈을 찾아 갑니다.

三 석 삼, 姓 성 성, 穴 구멍 혈. 제주의 세 성씨 시조가 땅으로 부터 올라왔다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삼신인이라고 불리는 세 명의 시조들이 수렵생활을 하다, 벽랑국에서 가축과 오곡의 씨앗을 갖고 온 세 공주와 결혼해 낳은 자손이 제주 고씨, 제주 양씨, 제주 부씨로 이어져 내려온다고 합니다.

삼성혈엔 정말 세 개의 구멍이 있습니다.

단군신화에 보이는 곰과 호랑이는 진짜 동물로서의 곰과 호랑이가 아닌 곰과 호랑이의 용맹을 숭상하는 부족간의 갈등에서 곰을 숭상하는 부족이 승리를 했을 것이라는 상징으로 보자고 하지요. 삼성혈 신화 또한 세 구멍 속에서 나왔다는 것은 동굴이나 땅 속 생활을 하며 평등하게 공동생활하던 부족들이 있었다는 것을 유추하게 되구요. 바다 건너 온 농경민족과의 결혼을 통해 성장해 간다는 상징으로 보아야겠지요.

입구엔 육지의 사당에서 보이는 홍살문이 있고, 이어 제주이니 만큼 돌하르방이 탐라 발상지라는 알림판과 함께 서 있습니다. 유적지 안내판의 설명글을 읽고 기념관에서 영상을 관람하고, 돌아 나오는 길 닫힌 문 틈 사이로 삼성사라는 사당을 바라봅니다.

조선 중종 21년 제주 목사 이수동이 제례를 모시고, 지금까지도 봄 가을과 12월 10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설명글이 보입니다. 제주 사람들에게 육지에서 파견된 유학자관리에 의해 전파된 제례의식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제주의 수많은 신들과 무속의식은 미신으로 치부되어 버려지고, 육지에서 옮겨온 선진 문화는 그 자리를 대체합니다.

선진문화는 곧 무력의 우위에서 오는 전파였겠지요.

삼성혈에서 시작해 시대순의 역사여행을 하고, 사흘 간의 마지막 여정은 4·3 평화공원에서 마침표를 찍습니다.

제주도에서 1947년 3월 1일을 시작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 한국전쟁 후까지의 무력충돌과 진압과정.

제주의 4·3은 광주의 5·18처럼 그 역사현장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살아있는 기억되어진 아픔입니다. 당시의 제주 인구 20만중 3만명이 숨진 처절한 아픔이지요.

4·3 평화공원 들어서는 한켠에 모녀상이라는 이름으로 아픔을 표현한 미술작품이 있습니다. 낮은 회오리 돌담을 빙글빙글 돌아 들어가면 눈밭에 맨발의 엄마가 아이를 품에 앉고 허리숙여 앉아 있는 모습. 4·3 당시 제주 한라산 중턱에서 발견된 모녀 시신에서 모티브를 따와 만든 형상입니다.

광주의 5·18. 분명 사상자는 있지만 발포 명령자는 없는 아직도 미해결된 역사지만 그래도 광주사태에서 지금은 광주민주화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매김되어 있습니다.

제주의 4·3. 공식 명칭은 제주 4·3 사건입니다. '사건' 일 뿐, 아직도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4·3 평화기념관을 들어서면 맨 처음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는 백비가 눕혀 있습니다. 그 밑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언젠가 이 비에 제주 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

올해는 제주 4·3 70주년의 해입니다.

흘러간 과거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를 위로하는 것은 사건 당사자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진실이 밝혀져야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삶의 가치관도 명확해지고, 밝은 미래로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역사공부의 목적이기도 하고 역사여행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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