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시를 통해 본 시인의 삶 '시인의 마을' 출간…소록도·벌교 등 인생 발자취 |
| 2017년 09월 20일(수)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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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시간에 시 한 편 나오면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학창시절, 우리는 시의 해석에만 관심을 가졌다. 시를 쓴 시인의 삶은 어땠을지, 그들이 살았던 마을은 어떤 모습이었을 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시인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시인의 마을' 저자 박수미는 백석 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를 읽다가 '내 사랑하는 어여뿐 사람'이 누군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 여인을 찾기 위해 시집을 찾아보니 그 여인이 통영에 살던 '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를 통해 낯선 풍경들이 시 안에 녹아들어 그 장소를 아우르는 시들만이 뚜렷이 남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를 시작으로 배낭을 둘러메고 시 한 구절에 담긴 풍경을 두 발로 찾아 나서게 된다.책 속에는 강화도, 안동, 통영, 묵호 등 다양한 지역이 나오는데, 그 중 우리 전남 지역 위주로 둘러보자.
◇한하운 시인과 소록도
전남 고흥반도 끝자락인 녹동항에서 1km 정도 떨어진 섬인 소록도에서는 지금까지도 한센병 환자 700여 명이 요양하고 있으며, 한센병을 앓았던 한하운 시인 또한 한때 소록도에서 요양하기도 했다. 그의 시에는 문둥이로 살아가는 자의 고통과 설움 끝에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의연함이 배어 있다.
한하운 시인은 17살에 한센병 진단을 받고, 평생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그는 병든 몸으로 대낮에 길거리를 걷는 것조차 힘들게 됐고, 겨울이면 머리카락을 긁다 얼어버린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이는 그의 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전라도 길'의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손가락 한 마디' 중에 '간밤에 얼어서손가락이 한 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 위에 떨어진다' 부분을 통해 그의 인생이 드러난다.
한하운 시인은 한센병 환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시 '보리피리'에 나오는 '인환의 거리'의 인간들 또한 보리피리 불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다. 한하운 시인이 시를 통해 고백한 한센병 환자로서의 아픔은 그가 인간이기에 겪는 아픔과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며, 그 깨달음은 스스로를 치유해 나가는 데 커다란 계기가 됐다. 이 '보리피리' 시는 현재 소록도 '메도 죽고, 놓아도 죽는 바위' 위에 새겨져 있다.
◇박노해 시인과 벌교
국내 꼬막의 60%를 생산하는 벌교는 순천과 고흥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바닷가 고장이다. 벌교는 꼬막의 고장임과 동시에 박노해 시인이 자란 곳이기도 하다.
박노해 시인의 본명은 박기평이며, 스스로 지은 필명 '노해'는 노동자 해방을 뜻한다. 1975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고흥, 벌교에서 자란 박노해 시인은 16세에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학업과 노동을 병행했다. 그의 시 '신혼일기'를 살펴보면 '지난 일주일의 노동,/기인 이별에 한숨 지며/쓴 담배연기 어지러이 내어 뿜으며/바삐 팽개쳐진 아내의 잠옷을 집어 들면/혼자서 밤들을 지낸 외로운 아내 내음에/눈물이 난다'는 대목이 있다. 이는 남도 벌판에서 자란 소년의 감수성이 타인을 향한 연민과 공감으로 이어졌고 자신의 울분과 분노가 혼자만 느끼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게 해준다. 박노해 시인은 노동자를 위한 파업을 시작하고, 이 과정에서 7년 6개월간 감옥에 수감된다.
수감생활 도중에도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시집을 출간했고, 많은 민중노래패가 그의 시로 노래를 불렀다. 그는 여전히 인간사회 정의를 꿈꾸며 지구촌을 누비고 있었다.
시 '식구 생각' 중 '김을 굽고 꼬막을 삶은 이별의 밥상 앞에서'라는 대목이 있다. 박노해 시인이 서울 살이, 감옥살이 중에도 종종 떠올린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아마 가족과 함께 둥그러니 앉은 밥상이었을 것이다. 추억의 반은 맛이라는 말이 있듯이, 가족들과 함께 했던 마지막 밥상의 추억에는 꼬막이 있다. 그 추억에는 우리 가족뿐 아니라 함께 밥 먹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한 식구라는 어머니의 가르침 또한 새겨져 있다.
시를 읽는 행위는 단순히 눈으로 글자를 읽는 데 그치지 않고 구절 속에 담긴 풍경과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들어보고, 찾아가는 일이다. 시는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시인의 삶과 생각을 읽으면 시는 저절로 이해돼 마음속에 드며든다.
자연과생태. 272쪽. 1만3,800원.
'시인의 마을' 저자 박수미는 백석 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를 읽다가 '내 사랑하는 어여뿐 사람'이 누군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 여인을 찾기 위해 시집을 찾아보니 그 여인이 통영에 살던 '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를 통해 낯선 풍경들이 시 안에 녹아들어 그 장소를 아우르는 시들만이 뚜렷이 남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를 시작으로 배낭을 둘러메고 시 한 구절에 담긴 풍경을 두 발로 찾아 나서게 된다.책 속에는 강화도, 안동, 통영, 묵호 등 다양한 지역이 나오는데, 그 중 우리 전남 지역 위주로 둘러보자.
◇한하운 시인과 소록도
전남 고흥반도 끝자락인 녹동항에서 1km 정도 떨어진 섬인 소록도에서는 지금까지도 한센병 환자 700여 명이 요양하고 있으며, 한센병을 앓았던 한하운 시인 또한 한때 소록도에서 요양하기도 했다. 그의 시에는 문둥이로 살아가는 자의 고통과 설움 끝에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의연함이 배어 있다.
한하운 시인은 17살에 한센병 진단을 받고, 평생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그는 병든 몸으로 대낮에 길거리를 걷는 것조차 힘들게 됐고, 겨울이면 머리카락을 긁다 얼어버린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이는 그의 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전라도 길'의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손가락 한 마디' 중에 '간밤에 얼어서손가락이 한 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 위에 떨어진다' 부분을 통해 그의 인생이 드러난다.
한하운 시인은 한센병 환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시 '보리피리'에 나오는 '인환의 거리'의 인간들 또한 보리피리 불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다. 한하운 시인이 시를 통해 고백한 한센병 환자로서의 아픔은 그가 인간이기에 겪는 아픔과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며, 그 깨달음은 스스로를 치유해 나가는 데 커다란 계기가 됐다. 이 '보리피리' 시는 현재 소록도 '메도 죽고, 놓아도 죽는 바위' 위에 새겨져 있다.
◇박노해 시인과 벌교
국내 꼬막의 60%를 생산하는 벌교는 순천과 고흥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바닷가 고장이다. 벌교는 꼬막의 고장임과 동시에 박노해 시인이 자란 곳이기도 하다.
박노해 시인의 본명은 박기평이며, 스스로 지은 필명 '노해'는 노동자 해방을 뜻한다. 1975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고흥, 벌교에서 자란 박노해 시인은 16세에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학업과 노동을 병행했다. 그의 시 '신혼일기'를 살펴보면 '지난 일주일의 노동,/기인 이별에 한숨 지며/쓴 담배연기 어지러이 내어 뿜으며/바삐 팽개쳐진 아내의 잠옷을 집어 들면/혼자서 밤들을 지낸 외로운 아내 내음에/눈물이 난다'는 대목이 있다. 이는 남도 벌판에서 자란 소년의 감수성이 타인을 향한 연민과 공감으로 이어졌고 자신의 울분과 분노가 혼자만 느끼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게 해준다. 박노해 시인은 노동자를 위한 파업을 시작하고, 이 과정에서 7년 6개월간 감옥에 수감된다.
수감생활 도중에도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시집을 출간했고, 많은 민중노래패가 그의 시로 노래를 불렀다. 그는 여전히 인간사회 정의를 꿈꾸며 지구촌을 누비고 있었다.
시 '식구 생각' 중 '김을 굽고 꼬막을 삶은 이별의 밥상 앞에서'라는 대목이 있다. 박노해 시인이 서울 살이, 감옥살이 중에도 종종 떠올린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아마 가족과 함께 둥그러니 앉은 밥상이었을 것이다. 추억의 반은 맛이라는 말이 있듯이, 가족들과 함께 했던 마지막 밥상의 추억에는 꼬막이 있다. 그 추억에는 우리 가족뿐 아니라 함께 밥 먹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한 식구라는 어머니의 가르침 또한 새겨져 있다.
시를 읽는 행위는 단순히 눈으로 글자를 읽는 데 그치지 않고 구절 속에 담긴 풍경과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들어보고, 찾아가는 일이다. 시는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시인의 삶과 생각을 읽으면 시는 저절로 이해돼 마음속에 드며든다.
자연과생태. 272쪽. 1만3,800원.
등록일 : 2015년 1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