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자의 도리 류씨문중 ‘목독’ 아시나요
구름속 새처럼 숨어사는 집
‘운조루’ 조선선비 품격 상징
나눔 미덕…200년 가문 번창
구례5일장 팥죽·순댓국 일품

지금 남도 들녘 어디든 농가들 마다 못자리 준비로 한창일텐데요. 지난 겨울 눈이 적게 와서 겨울가뭄에 걱정이 많았는데요. 지난 비로 조금은 해갈되었을거라 생각하니 마음 한편으론 안심이 되었습니다.
이번 주는 그런 농부의 마음을 잘 살폈던 고장으로 알려진 구례 운조루입니다.
‘타인능혜’. 가난한 이웃 사람 누구나 쌀을 꺼내 끼니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했고 그런 음덕을 베푸는 것이 가진 자의 도리임을 보여 줬던 류씨 문중의 상징물이 운조루에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는데요. 요즘을 사는 우리에게도 교훈이 되는 모습인 것 같죠? 멋지고 깊은 생각들이 베어 있을 구례 운조루를 찾아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섬진강을 따라 구례를 찾아가는 길은 지금 막 갖가지 봄꽃들로 가득한데요. 그 길을 따라 봄바람을 타고 행복한 봄 나들이로 좋겠죠.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운조루의 형상은 지리산에서 흘러 내린 능선이 형제봉으로 솟구치고 그 끝이 섬진강으로 사라지기 전에 구만들을 만들었는데요. 그 가운데 운조루를 지었죠.
18세기 조선 영조때 당시 삼수 부사를 지낸 류이주가 세웠습니다.
류이주가 낙안군수 등 여러곳의 국가건축물에 책임자로 있으면서 건축에 대한 다양한 식견이 많아 그 영향으로 지금의 운조루를 짓게 된거죠.
운조루는 99간의 대규모 주택인데요. 지금은 73칸만 남아 있습니다.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사는 집, 구름 위를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란 뜻의 운조루. 조선시대 선비의 품격을 상징하는 품자형의 배치를 하고 있는데요. 그 이름 만큼이나 멋스럽고 아름다운 집이죠.
지금으로부터 238년 전의 건물이었다고 보기엔 건물들이 잘 보존돼 있어 놀라움이 있는데요. 최근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면서 보호 관리되고 있습니다.
운조루라는 이름은 중국의 도연명이 지은 ‘귀거래혜사’에 나온 글입니다.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 오르고, 새들은 날기에 지쳐 둥우리로 돌아오네’의 싯귀에서 첫머리 두 글자를 취해 이름지었다고 하는데요.
도연명의 시에서처럼 멋스런 조선의 고가에 흠뻑 빠져 오는 시간이죠.
운조루는 좌청룡 우백호의 산세가 잘 어우러져 있고 내수구인 집 앞 도랑과 외수구인 섬진강이 제대로 되어 있는 명당터에 자리잡고 있구요. 집 앞의 오봉산은 신하들이 엎드려 절하는 형국이라고 합니다.
오미리 마을은 노고단의 옥녀가 형제봉에서 놀때 금가락지를 떨어트린 금환락지 형상이라고 하구요.
운조루 앞 연당은 남쪽의 산세가 불의 형세를 하고 있어 화재를 예방하기 위하여 조성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풍수에 맞게 이곳 일대는 금귀몰니, 오보교취, 혹은 오봉귀소의 명당이라고 합니다. 이런 곳에 집을 짓고 살면 자손 대대로 번창한다고 합니다.
또 이 집터에서 거북이의 형상을 한 돌이 출토되었는데요. 금귀몰니의 명당으로 남한의 3대 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쯤이면 집의 규모와 형태도 궁금하죠?
운조루는 129평으로 바깥사랑채, 안사랑채, 아랫사랑채 등으로 각각 누마루가 있었는데요. 지금은 아쉽게도 안 사랑채와 아랫 사랑채의 누마루는 남아 있지 않고 현재 이 집은 ‘一’ 자형 행랑채와 북동쪽의 사당채를 제외하고 ‘T’ 자형의 사랑채와 ‘ㄷ’ 자형의 안채, 안마당의 곡간채가 팔작지붕, 박공지붕, 모임지붕으로 연결되어 있는 일체형 구조로 옹기종기 아담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집안 곳곳의 풍광들이 그림처럼 펼쳐지죠.
운조루에서 빼먹지 말아야 할것이 있다면 바로 운조루에 있는 목독입니다. 목독은 나무로된 쌀독을 말하는데요. 이 목독의 마개에 타인능혜(他人能解)라는 글귀를 써두었습니다. 가난한 이웃 사람 누구든 쌀을 꺼내 끼니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한 것인데요. 이 목독은 가진 자의 도리임을 보여 주었던 류씨 문중의 상징물입니다.
여기에 또 뒷이야기가 있는데요. 우리가 아무리 없이 살아도 대낮에 들어 목독의 쌀을 가져 가기가 힘들 잖아요?
그래서 정문의 문을 이용하지 않고 목독이 든 곳 주변에 문을 두어 조용히 다녀 갈 수 있게 배려했다고 합니다.
200년이 지나도록 망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가문이 번창한 것은 분수를 지키며 생활하고, 이웃을 돌보았던 마음이 전승되어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류이주의 5세손인 류제양은 일만여편의 시를 쓰고 손자 류형업에 이르기까지 80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생활일기와 농가일기를 썼다고 합니다.
이런 기록문화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위대하고 소중한 선조들의 바른 유업이라 생각되구요. 구례 운조루에서 맞는 선조들의 지혜를 잘 이어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구례까지 갔으니 이번엔 구례의 먹거리들도 챙겨오는 시간이 필요하죠? 구례에 가면 반드시 다녀봐야 할 곳 중 하나가 바로 5일장입니다.
구례 5일장을 들러보아야 지리산과 섬진강에 온 보람이 있겠죠? 3일이나 8일이 되면 구례 5일장이 열리는데요.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죠?
구례장에 가면 없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 구례장은 지리산 자락에서 뜯어온 쌉싸름 향긋한 봄나물들로 풍성합니다.
여기에 시골 장터의 엄마 손맛을 더한 팥죽과 순댓국은 먹어 본 사람만이 그 진맛을 느낄 수 있죠.
모 방송을 통해 최불암이 ‘한국의 밥상’에 소개한 집이기도 하구요. 이수근이 1박2일에서 먹었던 국밥집과 이승기가 먹고 반했다는 팥죽집도 있습니다. 구례 시골장터의 풍광과 옛추억이 담긴 장터국밥과 팥죽도 함께하는 구례 여행 어떨지 싶네요.
<여행작가·KT올레TV 담양장성방송 대표>

찾아가는 길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구요. 호남고속도로 하행선을 따라 곡성IC를 들어와 섬진강을 왼편에 끼고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구례읍을 지나 하동방면으로 약 5km를 달리다 운조루 이정표를 보면서 들어오시는데요. 광주에서 출발해 1시간 정도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거리입니다.